지난 수십 년간 한국은 선진국의 성공 모델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우' 전략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왔습니다. 하지만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러한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김대식 교수는 이 위기 속에서 한국만의 독점적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제조업 데이터와 숙련공의 노하우가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통찰은 AI 산업의 발전 방향과 각 산업에 미칠 영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AI 시대 패스트 팔로우 전략의 한계와 새로운 패러다임
한국은 산업화를 선진국 대비 약 150년 늦게 시작했지만, 이미 검증된 길을 따라가는 '오픈북 수능'과 같은 방식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공 경험은 한국 사회에 '헬로스네이션'이라는 착시 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답을 아는 사람이 있고, 벤치마킹을 통해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하지만 챗GPT가 대중화된 2022년 11월 이후 불과 3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AI는 개인의 삶과 사업에서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인간의 적응력은 상상을 초월하여 이제 사람들은 기계에 질문하고 그 답을 믿고 판단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유튜브에서는 챗GPT, 제미나이, 그록 등 어떤 AI가 더 좋은지에 대한 논의가 마치 축구팀 이야기처럼 보편화되었습니다.
AI 시대에 패스트 팔로우가 불가능한 세 가지 결정적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발전 속도의 차이입니다. 중공업은 발전이 느렸지만 AI는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5년의 격차가 중공업 50년의 격차와 같을 수 있습니다. 둘째, 세계화 시대의 종말입니다. 과거 캐치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선진국이 기술을 가르쳐주고 시장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지만, 2025년 1월부터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각자도생의 시대로 전환되었습니다. 셋째, 헝그리 정신의 소멸입니다. 과거 부모 세대가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며 주 100~120시간 노동으로 150년의 시간 격차를 극복했지만, 오늘날 MZ 세대에게 과거와 같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AI의 기초 알고리즘은 빅테크가 만들고 있지만, 이를 특정 산업인 금융, 콘텐츠, 교육 등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아무도 해본 적이 없어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습니다. 이는 AI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기존 산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임을 의미하며, 각 산업에서 AI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국 과거의 세 가지 성공 요인이 사라졌기 때문에 AI 시대에는 '패스트 팔로우는 불가능'하며, 유일한 방법은 '내가 먼저 하는 방법'뿐입니다.
피지컬 AI 시대의 도래와 로보틱스 혁명
한국은 2026년까지 14조 원을 쓸 수 있는 26만 장의 GPU를 확보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는 원래 목표였던 2030년까지 5만 개 확보를 훨씬 뛰어넘는 성과입니다. 그러나 GPU는 자동차 엔진과 같아서 확보해도 데이터 센터라는 차체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데이터 센터 1GW 구축 및 운영에 약 50조 원이 필요하며, 26만 장 확보 시 최소 수십조 원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역설적인 상황은 현재 한국에는 GPU 수요가 약 100MW 수준으로, 확보된 GPU를 감당할 수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인 OpenAI, 제미나이 등은 데이터 센터 부족으로 서비스에 제약을 받고 있어 수요가 압도적입니다. 우리는 인프라를 만들면서 동시에 수요를 만들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이러한 딜레마의 돌파구는 피지컬 AI, 즉 로봇과 자율주행차 형태의 AI로 가는 것입니다. 로봇이 물병을 잡는 행위는 인간과 달리 물병의 위치 파악, 손가락과 팔 관절 값 계산, 이동 중 쓰러뜨리지 않기 위한 함수 계산 등 복잡한 인버스 키네마틱 계산이 필요해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은 미분 방정식을 계산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움직이지만, 로봇에게는 이것이 큰 도전입니다.
로보틱스 분야도 수식 기반 설명 대신 학습 위주로 바뀌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로봇은 수많은 아르바이트생이 로봇의 시야로 고글을 쓰고 로봇을 움직여주며 수천 번 보여주는 방식으로 학습 데이터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챗GPT가 가능했던 것은 지난 30년간 인터넷에 글, 그림, 영상 데이터가 많았기 때문이지만, 로봇 구동에 필요한 움직임 데이터는 인터넷에 부족하므로 지금 만들어야 합니다. AI가 도구로서 활용되는 것을 넘어 독립적 사고 부분까지 감당하게 될지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피지컬 AI가 학습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중심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제조업 데이터가 만드는 한국의 독점적 경쟁력
미국은 알바생을 고용해 로봇을 학습시키고 있지만, 일반인인 길거리 학생이 가르친 로봇은 특정 산업, 예를 들어 용접 같은 분야에 적용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피지컬 AI를 위해서는 '숙련공'의 데이터가 필요하며, 숙련공은 제조업이 강한 나라에 더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기회입니다.
코로나19 때 미국과 유럽은 마스크 공장이 없어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한국은 마스크 공장, 종이빨대 공장, 김치 공장, 반도체 공장 등 제조업 기반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미국과 TSMC는 숙련공 부족으로 공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한국에는 수십 년간 근무한 베테랑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의 존재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의 자산입니다.
한국의 베테랑들이 은퇴하기 전에 그들의 움직임 데이터, 즉 나사 조립, 용접 등의 노하우를 확보하여 암호화하면, 이는 대한민국만이 가진 '인터넷 데이터'가 되어 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처럼 기술을 기부하거나 테이크 방식으로 주고받기 어려운 각자도생 시대에서, 이 피지컬 AI 데이터는 미국이 GPU로, 중국이 희토류로 협상하듯 한국의 협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제조업을 유지한 것이 갑자기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각자도생 시대에서 한국만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찾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개인 차원에서도 내 업무에서 내 능력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AI를 단순히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AI 시대에 내가 어떻게 선도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한국이 제조업 데이터라는 독점적 자산을 발견한 것처럼,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생존 전략이 될 것입니다.
AI 시대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한국이 과거의 패스트 팔로우 전략을 버리고 제조업 데이터를 활용한 피지컬 AI 선도 전략으로 전환한다면, 각자도생 시대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AI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쇠락하는 산업이 점차 늘어날 것이지만, 인간이 중심을 잡고 독립적 사고를 유지한다면 AI는 여전히 도구로 남을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독립적인 사고와 논리적인 스탠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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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3oIL71er4YI?si=WPCrBDLJaqyGH88S